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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팔' 10주년, 톱스타가 된 아이들과 '응답하라' 시리즈의 묵직한 미래 [M-scope]
(MHN 홍동희 선임기자) 2025년 11월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하 '응팔')이 방영 10주년을 맞았다. 시간은 흘렀지만, '응팔'을 향한 대중의 열기는 식지 않았다. 최근 '채널 십오야'를 통해 공개된 10주년 기념 MT 사진과 영상은 공개와 동시에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다. 이는 단순한 추억 소환을 넘어, '응팔'이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대중의 마음속에 '현재진행형'으로 살아 숨 쉬고 있음을 증명하는 사건이다.
사진 속 박보검, 혜리, 고경표, 이동휘 등 '쌍문동 5인방'은 10년 전과 다름없는 끈끈함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 10주년 MT는 마냥 행복한 동화로만 흘러가지 않았다. 대중의 관심은 어쩔 수 없이 한 지점, 혜리와 류준열의 '재회 불발'에 집중됐다. '응팔' 속 판타지와 10년의 현실 사이 간극이 드러난 것이다.
'응팔' 속 인물들은 1988년 쌍문동에 멈춰있지만, 이들을 연기한 배우들은 지난 10년간 각자의 복잡한 '현실'을 살아왔다. 10년이 지났는데도 배우들의 작은 소식 하나하나가 '응팔'과 엮여 화제가 되는 것을 보면, '응팔'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가졌는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남편 찾기'를 넘어선 '공동체'의 승리
'응답하라' 신드롬은 2012년 '응답하라 1997'에서 시작됐다. '주인공의 남편 찾기'라는 강력한 궁금증 유발 장치는 '응답하라 1994'까지 이어지며 시리즈의 성공 공식이 됐다. 하지만 '응팔'은 방영 전 혜리의 주연 캐스팅 소식에 "시작부터 잘못된 것 아니냐"는 걱정 섞인 시선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응팔'은 최종회 19.6%라는 믿기 힘든 시청률로 모든 걱정을 잠재웠다. 이 폭발적인 성공 비결은 바로 '접근 방식의 변화'에 있었다. '응팔'은 주인공 5인방뿐만 아니라 '그들의 부모님 세대에게도 각자의 이야기'를 만들어 주었다.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한 결정적 순간들은 동일-일화, 성균-미란 부부 등 부모님들의 짠하고 따뜻한 이야기에서 터져 나왔다. 극의 진정한 주인공은 '쌍문동 골목길'이라는 '공동체' 그 자체였다.
이 전략은 '응답' 시리즈의 매력을 '그때 그 시절 문화'에 대한 그리움에서 '사람 사이의 정'에 대한 그리움으로 넓혔다. '1997'이 특정 세대의 추억에 기댔다면, '1988'은 '이웃 간의 정'과 '가족애'라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을 바탕에 깔았다. 그 결과, 10대는 물론 1988년을 실제로 살아냈던 40~50대 시청자들까지 TV 앞으로 끌어모았다. 특정 세대의 추억을 넘어 모든 세대가 공감하는 '가족 드라마'로 나아간 것, 이것이 '응팔'을 전무후무한 기록으로 이끈 핵심 비결이었다.
'쌍문동'이라는 이름의 '스타 사관학교'
'응팔'이 남긴 가장 빛나는 유산은 바로 '사람'이다. '쌍문동 5인방'은 지난 10년간 "모두 주연급 배우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를 완벽하게 증명해냈다.
'김정환' 역의 류준열은 1,200만 영화 '택시운전사'를 시작으로 '올빼미', 'The 8 Show'까지 영화와 글로벌 OTT를 넘나드는 톱 배우로 성장했다. '최택' 역의 박보검은 '구르미 그린 달빛'으로 '아시아 세자' 반열에 오르며 명실상부한 한류 아이콘이 됐다.
캐스팅 논란의 중심이었던 '성덕선' 역의 혜리는, '응팔'로 연기력을 입증한 뒤 '간 떨어지는 동거', 영화 '빅토리' 등을 통해 '아이돌 출신' 꼬리표를 떼어낸 주연 배우로 자리 잡았다. '선우' 고경표와 '동룡' 이동휘 역시 각각 '육사오(6/45)'의 해외 흥행, '극한직업'과 '카지노', '수사반장 1958' 등을 통해 대체 불가능한 연기파 배우로 우뚝 섰다. '정봉' 역의 안재홍조차 '마스크걸'의 '주오남' 역으로 충격을 안기며 "연기력이 너무 뛰어나 은퇴작 아니냐"는 '은퇴밈'을 유행시킬 정도다.
이들의 10년 발자취는 '응팔'이 단순한 흥행작을 넘어, 배우들의 잠재력을 폭발시킨 '스타 사관학교'였음을 명백히 보여준다.
'응답하라 2002', 기대와 현실의 장벽
'응팔' 10주년과 맞물려, 제작사 대표가 '응답하라' 시리즈의 재개 가능성을 언급하자 팬들의 기대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가장 강력하게 소환되는
시기는 단연 '2002년'이다. '월드컵 4강 신화'라는 전 국민이 함께 기뻐한 긍정적인 기억이 존재하는 마지막 시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원호 감독이 직접 밝혔듯, '응답하라 2002'는 제작이 "제일 힘든" 시리즈다. 문제는 어마어마한 '저작권료'다. '응팔' 제작 당시 88서울올림픽 장면을 쓰기 위해 스위스 IOC 본부와 직접 통화했던 경험을 털어놓은 신 감독은, 2002년 월드컵 장면은 물론 'Be the Reds'라는 응원 문구조차 별도의 저작권이 묶여있다고 토로했다.
이것이 바로 '응답하라' 시리즈가 마주한 어려운 현실이다. '1997' 시절과 달리, 2025년의 미디어 환경은 글로벌 OTT가 중심이다. 전 세계, 영구적인 사용 권한을 확보하기 위해 지불해야 할 비용은 '응답하라 2002'의 제작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 '응답' 시리즈를 성공시킨 바로 그 '추억의 자료'를 빽빽하게 채워 넣는 방식이, 2025년의 미디어 환경에서는 오히려 가장 큰 걸림돌이 되어버린 것이다.
'응답하라 1988'은 '남편 찾기'라는 틀을 넘어, '가족'과 '공동체'라는 가장 보편적이고 따뜻한 가치를 전면에 내세워 19.6%라는 신화를 썼다. 10주년 MT로 다시 모인 배우들과, 이들을 보며 10년 전처럼 뜨겁게 반응하는 대중은 '응팔'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증명한다.
'응답하라 2002'가 거대한 장벽에 부딪혀 영영 돌아오지 못할지라도, '응팔'이 우리에게 준 대답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경쟁에 지치고 외로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의 따뜻함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해준다는 것. 그것이 '응답하라 1988'이 10년이 흘러도 여전히 우리 가슴에 '울림'을 주는 이유다.
사진=tvN, 채널십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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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article is provided by MHN Sports.